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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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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국적[nationality]

    Name

  무봉   [muni@urbuddha.net]
국적: 가비라 성
국민: 샤카 족
부친: 정반 왕
모친: 마야 부인, 싣달타 출생후 곧 사망


그렇다면 무엇이 부처님의 국적인가? 인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인도인인가? 네팔 근처이므로 네팔이라 불러야 되는가? 지금 인도인들과 옛날 인도가 종족부터 서로 다르니 어쩌지? 지금 불교는 오히려 태국 대만 한국 일본에 주로 성행하고 인도는 명분이요 티벳은 전통만 살아 있으며 실속이 없으니 무어라 말하랴?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은 이미 저 구담 석가무니의 최초 역사적 시발점으로부터 발전하여 온 혹은 발달 종교를 의미하니 敎理에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석가라는 인물에 우선하여 말할 것인가?


실제로 부처님의 교설과 意旨를 불교로 본다면 무엇에 의지하여 佛法이라 부를 것인가?


원효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승이다.
보조는 한국의 불교 종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저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열반하였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하였더라도 상관 없이 위대하다. 그러나 저들의 위대함을 누가 아는가? 역사학자들에 의하여? 불교학자들에 의하여? 교과서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일까?


'누구나'라는 말은 결국 '아무도'라는 말과 같다. 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전문가의 견해가 다르고 비 전문가는 더구나 제멋대로일 터인 즉 믿음이야 말로 믿을 수 없는 얘기일 뿐이다.


부처님은 불교 전문가가 아니다. 특히 부처님은 불교를 믿지 않는다. 예수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과 꼭 같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자기가 무엇을 위해 믿을 것인가? 부처님은 예수나 그 밖의 누구처럼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와 예수는 남을 위한 존재라는 말이다. 중생을 위한 존재이며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한 존재이며 하찮은 종들을 위한 존재이다. 자신을 위하여 존재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도 전문가의 말인가? 철학적이기 때문인가? 일반인들은 일반적인 의견과 견해만 알고 전문적 언어를 모르기 때문인가? 그러나 만일 비 전문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면 전문가의 소리는 누구를 위한 전문인가? 이는 곧 전문가의 비전문가에 대한 책임론이다.


부처는 자신이 아닌 중생을 깨우쳐 줄 책임을 지닌다. 동시에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이기도하다. 부처는 일체 중생이 그 본성 上 부처가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여 말하고 있다. 佛性은 중생의 理想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편이 옳다.


부처는 그 이름이 如來다. 부처가 부처를 낳을 리 없고 더구나 중생에 의하여 태어날 수도 없는 까닭이다. 하늘이 낳으면 하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또 이 탄생과 출신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제기하면 부처와 하느님은 곧 인간의 해석에 의하여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상한 理性을 갖게 된다.


부처는 샤카 족의 후예라고 되어 있다. 석가무니라고 불리는 이유가 되었으니 번역하여 能仁寂默이라하였다. 그래서 가비라 성에서 태어나시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국적이 가비라 성이라는 말이 아니다. 혼돈하지 말라는 배려에서 가비라 라고 말하였으니 牛頭라 하기도 하고 또는 실제로 金頭이며 妙德이라 풀이되는 말이다.

인도에도 네팔에도 역사적으로 그런 이름의 나라가 존재한 적은 없다. 역사가 아니면 神話인가 라고 묻는 이가 있거니와 많은 소위 학자임네 하는 이들은 밀어붙여 한가로이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제 집안 일도 잘 모르면서 이런 저런 소리로 가문의 높음을 얘기하듯, 아마 과장이나 허풍이 없을 수도 없으리라.

문제는 과장도 허풍도 아닌 진실에 있다. 부처님의 일생과 나라와 세계를 논술하거나 해설하기 위하여 인간은 그 크나큰 신심으로 무엇부터 말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목된다. 부처님이라는 고귀하고 존중스런 聖體를 구현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이치에 걸맞는 事相을 겸하여 얻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부처님 일생이다. 그리고 불교를 알려면 결국 무엇이 부처님 일생인지를 가장 적절하고도 심도 깊은 방식으로 저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무엇이 부처인가를 설명하는 일이 곧 불교인 것이며

무엇이 부처인가를 천득하는 일이 곧 조사의 禪인 것이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정반왕이다. 정반은 조촐한 공양이라는 말이다. 왕이시니 이 세상에서 가장 조촐한 공양에서 부처가 나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누구인가? 마야부인이라고 한다. 마야는 마하야나의 준 말이다. 큰 수레라는 뜻에서 요즈음 大乘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레는 실어 나름이 본분이다. 부처를 실어 나르므로 부처님 어머니인 것이요, 이미 실어 날라 목적지에 다달았다면 수레마져 버리는 것이 상례이다.


큰 수레는 이미 부처를 건넨 것이고 이제 스스로 자만하여 정착하면 더 이상 수레가 아니다.왜 마야 부인께서 이렛만에 열반에 드시었다고 이르는지 알 일이다. 이제는 성장하고 성숙시키는 일 뿐이다. 부처님 만이 드시는 공양이 곧 왕이다. 이 음식이 일체 세간의 무릇 중생을 먹여 살리는 福田이므로 부처님의 아버지인 것이다.

부처님의 國籍이 무엇인고?
無刹시방[十方]이니라.

무엇이 불타인고?
뜨거운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한떨기 얼음꽃이니라.

調達이는 惡業만을 일삼아 살았거늘 어찌하여 부처의 사촌이 되었는가?
그의 업이 곧 부처의 모두이니라.

(Update time : 2005-07-17 오후 9:21:35,   view : 1102)
 Comment
무봉     (2005-07-30 오후 5:49:48)
브처님 초생하시에 일컬은 한마디 소리는 마치 큰 소의 울음 소리와도 같았느니라.
Befor    Korean Budd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