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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암[惠菴]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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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   [onenall@urbuddha.net]
先師는 평생에 주지 한번 제대로 한 경력이 없으시다. 해방 이전에 妙香山 보현암이라고 들은 줄로 기억하거니와 그것도 잠시 行脚하노라 남에게 맡기고나서 滿空 선사와 性月 선사께 공부하고자 내려오시더니 그 길로 해방되어 실제로는 滿期를 채운 적도 없다. 修德寺에 만공 선사를 후계할 인물이 없으니 큰 나무 밑에는 작은 것이 없고 오직 곁으로 멀찌감치 설 뿐이라하겠다.

수덕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키 위하여 內外 禪院을 두고 悳山과 古峰을 임명하시었으나 모두 덕숭산에 머물지 않고 터를 옮겨 주지하였다.

곁에 있지 않고 떠난 데에는 나름대로의 뜻이 있었겠지만 아뭏튼 화합을 저해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한다.

靑潭은 道峰에, 田岡은 龍華에, 古峰은 三角山 華溪에, 悳山은 나중에 天竺山 佛影에서 각각 법을 펼치기도 하였는데, 慧月 스님의 제자들은 주로 남방으로 내려 갔고 年輩가 같은 性月 스님도 주로 通度와 梵魚 등에 머물렀다. 실제로는 모두 덕숭산의 갈래요 가지이겠으나 각자 다른 家風과 氣風을 형성하니 同異와 差別이 본래 無根임을 알 것이로다.

법과 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하시니 한 번도 일신의 평안을 위하여 주지하신 적이 없듯 스승이 움직이는 곳에는 불원천리하시고 찾아 공부하시니 참으로 比丘라, 구태어 청정행을 고집하지 않으시고 계행을 물으면 "나는 戒를 모른다"고만 이르시니 도반들 사이에서도 화합과 융합의 스님이라 칭찬하였다.

종단이 형성되고 수행하든 도인들은 모두 직책과 소임 맡는 일에 분주할 때에도 스님은 다만 화두 공부에만 진력하신다. 가는 곳마다 선방이요 만나는 이마다 도반이라 상대가 무어라하든 화두를 묻고 다그치시니 법문 잘하시는 전강 스님도 머리를 설레설레 져었다.

말년에 내 묻기를,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 누가 제일 보고 싶으십니까?" 여쭈니 망설이지도 않고, "전강"이라 하시었다. "어찌하여 그렇듯 그리워하십니까?" 여쭈니, "비록 다시 眛하여 功力을 쌓지 않더라도 공부에 대한 신심은 거의 神力에 가깝다." 하시었다.

법어집에 나와 있는 얘기이지만 托鉢話와 安身立命 법문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전강 스님도 입을 다물게 한 유명한 公案이다. 두 분은 아마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절친하신 사이로 보인다. 공부가 있으면 제일 먼저 찾은 이가 이 두 분이다. 더구나 두 분 다 세상이 다 아는 多辯家이시다.

이상한 일은 이 두 분이 모두 주석할 자리가 없으시었다. 전강스님은 그래도 자력으로 절도 창건하시고 문중을 거느리시었지만 혜암 스님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80이 되실 때까지 아무도 모시려 들지 않았고 겨우 비구니 처소에 몸을 기탁하며 지내시었다. 수덕사 見性庵이 그 하나이며, 서울 성북동 八正寺도 그렇거니와 온양의 無雙院은 비구니 玉毫의 토굴이었다.

평생 대중 처소만 도시었으니 문중도 도반도 따로 없고 그야말로 혈혈단신이 된 것이다. 뒤에 이르러 수덕사에서 노장으로 모시어 조실이라는 所任을 맡기신 셈이지만 그나마도 "지옥살이 자청할 까닭 없다"하시며 뿌리치시었다. 그리하여 惠公스님이 조실을 사시고 노장님은 箋室이라 불러 형식상 대접하기에 이르렀든 것이다.


이름과 명예를 두려워 하시니 비록 부처의 이름이라도 그르치기는 매 일반이라.


무리지어 다니는 根機가 다르니 각 무리마다 그 어리석은 제자들이 스승의 이름을 빌어 권세를 누리고 대중의 힘을 빌려 세력 확장하고 有形의 佛事일으키는 일에만 급급하여 노력을 경주하니 부처님 당시에도 "이 때가 末世라" 외친 이유를 짐작하기에 이르른다. 공부는 뜻에 없으면서 함부로 우리의 법이 아무 누구의 법과 다르다는 말을 쓰거니와 모두 남의 책 나의 책 잘 못 읽은 연유라 남의 문자에 눈 가리움을 입어 제 문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가리어 보지 못하는 제 허물은 어찌하랴? 공부하고 염불하라는 입이 틀어막히어 아지도 못하고 지껄이니 서둘러 자신의 엿보인 허물 가리기에만 바쁘고 변명할 가치도 없는 자신의 미혹을 자긍심으로 바꾸어 은폐시키려 하였다.

희한한 일은 유명한 사람을 名利僧이라 부르는 것이니 저들을 뒤쫓는 무리는 더욱 가관이다. 이렇듯 법과 명예를 같이 본다면 俗塵을 언제 여읜다는 말인가? 出家하는 사람이 아니고 家出한 무리로 절집을 채우는 격이로다.



無所有는 오직 세상을 통채로 삼킬 줄 아는 根機만이 뽑낼 줄 아는 功德이라.


스님은 일평생 돈을 만지지 않으시었다. 시자들만 좋은 셈이 되었다. 마지막 열반 노자도 저들의 호화로운 고급 승용차 구하는 일에 씌여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부도는 완성되지 않았다. 당신도 바라지 않으시었을 터이지만....

(Update time : 2005-06-10 오후 2:33:19,   view : 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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